채 우현은 행복하다. 행복했다. 행복하지 않다. 고통에 몸서리치며 슬픔을 토해내는 그를 알아주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1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미친 듯이 눈물을 흘리고 고통에 절여져 제 귀를 틀어막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 감각이 끔찍하게도 싫어 도망치고 싶었다. 왜 도망쳤더라, 이제는 이유까지 기억하지 못한 채로 다시 웃었다. 끔찍한 1분이 지나간 탓이리라. 자정이 지나는 그 찰나의 순간, 그는 자신이 점점 미쳐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이내 찾아오는 기쁨과 쾌락에 머릿속에 그려낸 절망을 다시 지워나갔다.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


이 이야기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하면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신인이 표기되지 않은 익명의 편지 한 장이 채 우현의 앞으로 도착했다. 처음에는 누가 장난을 쳤겠거니, 하여 열어보지 않았지만 잠시 외출을 하고 온 사이에 동거인 설아가 그것을 열어본 모양이다. 혹여 이상한 것이라면 경찰에 신고라도 할 요량이었는지. 버리려고 놓아둔 것인데 뭣하러 그런 걸 열어보냐며 그녀에게 한 마디 했지만 제때 버리지 않은 제 탓도 있었으니 한숨을 가볍게 쉬고는 넘겼다.


“그런데 우현아, 이상한 말이 적혀있었어.”


그 말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그런 부류의 것인데, 이상한 놈이 장난이라도 친 것이라면 어떻게든 찾아내서 가만두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에 그는 그녀에게서 편지를 건네받아 적힌 내용을 읽었다. 편지에 쓰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 채 우현의 행복의 대가 」


행복의 대가…? 도입부부터 행운의 편지와 비슷한 맥락이라 그는 살짝 짜증이 서린 표정을 지었다. 보낸 사람도 참으로 할 짓이 없거니, 하며 눈동자를 굴려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동아리 사람이나 학과 동기나 선후배, 혹은 제 친구 별하가 이런 짓을 한 것일까. 누구든 걸리기만 하면 가만 안 둔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그곳에는 상당히 그의 눈에 거슬리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 당신에게 닥쳐올 모든 절망을 기쁨과 쾌락으로 바꿀 수 있는 행복을 얻습니다. 그 대신 매일 자정에 커다란 슬픔에 잠긴 채 헤어 나올 수 없게 됩니다. 」


모든 절망을 기쁨과 쾌락으로 치환한다. 우현은 그것이 결코 행복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악질적인 장난을 친 사람에게 화가 들끓을 정도였다. 그는 이를 빠득 갈며 편지를 찢어버렸다. 제 아픔을 아는 별하가 이런 장난을 쳤을 리가 없었다. 설아가 그런 장난을 칠 성격이 못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 도대체 누가? 그것을 알 길은 없었으나 그는 제 아픔을 가지고 장난질을 하는 놈을 가만둘 생각이 없었다.


“늦게 들어올 거야.”


짜증이 밀려오는 탓에 그는 가방을 침대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설아를 두고서 지갑을 챙겨 바깥으로 나갔다. 그런 그를 한 번 바라보던 설아는 한숨을 내쉬며 그가 찢어버린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행복의 대가는 편지의 수신인 채 우현이 편지를 본 이후 24시간 뒤부터 효력이 발생됩니다. 채 찢어지지 않은 종이 조각 모서리에 적힌 글귀에 설아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


겨울의 공기는 차가웠다. 추위를 많이 타는 그가 바깥으로 나가서 기분 전환을 하겠다고 하는 것에서 이미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이 선연히 드러났다. 그는 바람이 잘 불지 않는 건물 뒤편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물었다. 칙, 칙. 라이터를 두어 번 만지며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길게 연기를 뿜어냈다. 매캐한 연기가 허공에 흩날리고 텁텁한 공기가 폐를 새카맣게 물들인다. 몸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담배를 쉽사리 끊지 못했다. 동생이 다시 깨어난다면 모를까, 어떻게든 스스로를 망치지 않고서는, 이렇게라도 기분을 달래지 않는다면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런 이유에서 시작한 담배이기에 쉽게 끊기 어려운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우현아~! 여기 있었어?”
“어, 왔냐.”


키는 크면서 그에 어울리지 않게 애교라니. 고개를 들어 제 앞으로 다가온 남자를 바라보던 우현은 목이 아픈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남자가 주위를 환기하려는 듯 손을 휘휘 젓더니 울상인 목소리로 그를 타박했다.


“담배 피우려고 구석에 있었어? 찾기 얼마나 힘들었는데. 비흡연자인 친구 걱정은 전혀 안 해줘?”
“그럼 금방 태웠는데 바로 끄라고? 담뱃값 네가 대줄 거냐?”
“피지도 않는데 내가 왜!”


빽 소리를 지른 별하를 보며 우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지그시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건물 벽에 아무렇게나 담배를 지져끄고서는 담배꽁초를 바닥에 툭, 버리고는 주머니에서 과일향 탈취제를 꺼내서 옷 여기저기에 뿌렸다. 그가 이제 됐냐는 눈빛으로 별하를 바라보자, 그럴 거면 처음부터 피지 말라는 표정으로 응대했다. 그들은 처음 가기로 약속한 술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


“너 요즘 이상해, 그거 알아?”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별하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술을 마시는 우현을 바라보았다. 분명 한 달 전에 만났을 때는 상당히 기분이 나쁜 채 악질적인 익명의 편지를 받았다고 열을 내더니, 최근 연락도 자주 하고 동생 우빈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결단코 금연하지 않겠다던 애가 금연까지 하고. 마치 8년 전의 일이 없었다는 듯 웃고 있는 꼴이 아주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이니까. 몇 년을 봐온 친구를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건데? 왜, 부러워서 그러냐?”
“아니, 요즘에는 빈이 얘기도 안 하고 걱정도 안 하잖아. 네가 힘든 게 좋다는 건 아닌데, 비정상적인 것 같아. 행복한 날도 있고 슬픈 날도 있는 건데, 우현이 넌 지금 그런 게 아니잖아.”
“너까지 왜 그래?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 건 그러려니 하겠는데.”
“채 우현.”


술잔을 까딱이며 가볍게 한숨만 쉬며 넘어가려는 우현과 다르게 별하는 얼굴을 굳혔다. 단호하게 제 이름을 부르는 그의 언행에 우현은 들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평소 성씨까지 붙여서 말하지 않기에, 그만큼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우현이 별하의 의견에 동의를 한 것은 아니다. 지금 행복한데, 아무런 이상도 느껴지지 않는데 뭐가 잘못됐다는 것인가.


“저번에 나한테 말한 편지 기억나? 그때 그 내용대로 된 것 같은데.”
“야, 세상에 그런 게 실제로 일어나는 게 어딨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오로지 우현뿐.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지금 우현의 상태를 보면 그것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현은 그것을 보면서 술잔을 다시 들었다. 술을 홀짝이다가 입을 열려던 순간, 자정이 찾아왔다.


쨍그랑! 고개를 숙이고 있던 별하가 놀라 고개를 들었을 때, 우현은 억눌린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다. 마치 조금 전의 행복은 가짜라는 듯 울면서 고통스러워했다. 그런 모습을 처음 본 별하는 당혹스러웠지만 그를 안고 괜찮다고, 몇 번이고 말해주었다. 아아, 그래. 나는 미쳐있었구나. 미쳐가는 것 같아. 차라리 날 죽여줘. 헤어 나올 수 없는 슬픔의 늪에서 우현은 다시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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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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