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풀 꺾인 추위에도 우현은 집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그의 일상은 특별할 것이 없었다. 굳이 부모님을 만나러 갈 생각도 들지 않았고, 설령 찾아간다고 해도 파티 분위기를 내고 싶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이럴 때일수록 더 즐겨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제 생일이든 크리스마스든, 제대로 챙기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행동을 이해했으나, 한 편으로는 가슴 한 편이 욱신거렸다. 죄책감으로 얼룩진 우현이 벌써 8년째 진심으로 웃는 날이 없었던 탓이다. 하나, 이번은 조금 달랐다. 차이가 있다고 한다면 그와 동거를 하는 설아와의 관계이다. 거창하게 동거라고는 했지만, 실상은 단순한 룸메이트였었다. 그들의 사정이 엉망진창인 실타래처럼 얽히고, 우현은 기어이 제 밑바닥의 일부를 토해냈다. 그것이 거짓투성이인 연인 관계의 시발점이었다.


거짓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거짓으로 사랑을 연기했다. 그런 나날 속에 다가온 크리스마스 이브다. 그들의 관계를 고려하면, 우현은 바깥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설아와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냈어야 했다. 그는 제가 추위에 약한 탓이라고, 그렇게 변명을 둘러대었다. 무엇을 하는지, 바깥으로 나간 설아가 돌아오지 않자, 우현은 부엌 쪽에 잠시 눈길을 두더니 소파에 길게 누웠다. 무거운 피로가 우현을 짓누르자, 그는 버티지 못하고 팔을 올려 이마에 올렸다. 눈꺼풀 위로 그림자가 지자, 그는 그제야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아주 잠깐의 옅은 잠이었다.




삑, 삐빅. 잠시간 시간이 흘렀을 즈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실내의 눅눅한 공기에 설아는 코트의 단추를 하나 풀며 들어왔다. 유난히 조용한 공간에 주위를 둘러보던 그녀는 소파에 늘어져 잠을 청하고 있는 우현을 보고는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조금 있으면 저녁 먹을 시간인데 불편하게 여기서 자고 있네. 그녀는 그를 깨울 요량으로 다가가 소파에 살짝 걸쳐앉았다. 우현은 그녀가 온 지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풀어진 모습을 보는 것은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었기에 설아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달콤한 말로 사람을 흔들어 놓는 거짓말쟁이, 못된 사람. 그런 그가 어쩐지 얄미워서.


다음 순간, 설아는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해야 했다. 자는 줄로만 알았던 그가 마치 처음부터 깨어있었던 것처럼 그녀의 손목을 잡아챘기 때문이다. 아프게 잡은 것이 아니라, 행동을 저지하려는 것처럼. 그는 몸을 일으켜 앉으며 거리를 좁혔다. 손목이 잡힌 탓에 더 몸을 물리지 못한 설아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바짝 다가온 탓에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을 때, 숨이 바로 코앞에 닿았던 탓이다.


“자는 사람한테 뭐하려고 했어, 설아야?”


설아는 아무런 말도 못 했다. 평소에 온갖 달콤한 말로 흔들어 놓으면서, 정작 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소파에 늘어져 잠이나 자고 있는 것이 얄미워서, 라고 어떻게 얘기하겠는가. 그 거짓 놀음에 대한 모든 책임은 그녀 본인이 감당하기로 이미 그와 얘기를 마친 상태인데. 어떻게 얘기하겠어, 그의 말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면서 흔들린다는 사실을.


우현은 눈동자를 굴려 거실 벽에 달아둔 리스를 바라보았다. 어여쁜 장식과 얽혀있는 것 중에는 겨우살이도 함께 있었다. 그는 다시 시선을 그녀에게 돌리며 입을 열었다.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겨우살이에 대한, 기묘하고도 이상한 이야기. 그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분야의 것이었지만, 혹자에게는 로맨틱하게 들릴 그런 이야기를.


“설아야, 그거 알아? 겨우살이 밑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에게나 키스할 수 있어. 그 아래에 있다가 키스를 받아도 상대를 용서해야 해. 내가, 뭘 할 것 같아?”


평소 그가 사용하는 탈취제에서 훅 끼쳐오는 달달한 과일향이 설아의 코끝을 간질였다. 거리가 가까웠고, 붙잡힌 손목에서는 그의 손에서 전해져오는 온기가 느껴졌고, 입김이 간질이는 탓이다.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이브였고, 분위기가 이상한 기류에 휘말렸으며, 그의 거리가 더 가까워지고 있는 탓이다. 우현은 그녀의 손목을 잡은 손에서 차차 힘을 뺐다. 그것이 설아의 양 뺨을 부여잡을, 그런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그녀는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귓가에 작게 키득거리며 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얄밉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괜스레 열을 올린 것이 설아는 무척이나 억울했다.


“알잖아, 네가 원하지 않으면 난 손 안 대.”


달콤한 말을 하며 넘어간 것은 분명 그들 사이의 관계 탓이다. 아무런 관계도 아닌 그녀에게 가벼운 발언을 던지며 스킨십을 행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원한다면, 해줄 수야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마음도 없는 행위일 것이고, 단지 그들의 관계로 인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우현은 그대로 일어나 부엌으로 걸어갔다. 배고프다, 저녁 먹자. 마치 조금 전의 일은 없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에 설아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한편으로는 화제가 돌아간 것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쉽사리 그 장면이 잊히지 않아, 말수가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그러게, 뭐 먹을래?”
“사실 이미 해놨어. 끓이기만 하면 돼.”


저녁 메뉴가 뭔데? 밀푀유나베. 설아는 달달한 게 좋지? 특별히 화이트 와인으로 준비했어. …센스는 있네. 그런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겨울의 밤은 빠르게 찾아왔다. 우현은 오랜만에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기로 했다. 다른 이들에 비하면, 아주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에 가까운 조촐한 파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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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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