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우현은 어렸을 때부터 결코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기적이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에만 정을 주었다. 무언가를 이용하고자 하면, 영악함은 충분히 그 안에 잠재되어 있었기에 불가한 것도 아니었으나, 행할 의지가 없었고 그런 일은 귀찮다고 여겨 굳이 하지 않았다. 험한 말을 일삼았고, 주위의 평판도 좋지 않았다. 그러한 성정 탓에 인간관계가 원만할 리가 없었다. 소년을 가두는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는 좀처럼 주위에 사람을 두지 않았다. 걸핏하면 다투는 것은 기본이고, 무슨 말이든 곱게 해주는 이 아니었다.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주먹을 휘두르며 싸우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성격이 완전히 비틀린 것은 또 아니라, 저를 아껴주는 부모가 과하게 애정을 줄 때면 귀찮아하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못되게 굴지는 않았다. 저와 정반대인 동생에게는 어째서인지 귀여워하고 무척이나 아꼈다. 유난히 동생에게는 끔뻑 죽었고, 그에게 하는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하나뿐인 형제는 끔찍하게 여기면서 인간관계에서 겉도는 재수 없는 인간. 그게 채 우현의 어렸을 적 모습이다.
“윤 설아, 우리, 작별 인사나 할까.”
많은 일들이 있었다. 어느덧 성년이 된 우현은 많이 바뀌었다. 본질은 그대로라고 하나,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마치 퍼즐 조각 몇 개를 잃어버린 것처럼, 고장 난 시계 초침처럼. 그는 제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무서우리만치 차갑고 서늘한 눈초리, 그리고 어쩌면 경멸의 눈빛. 욕이란 욕은 다 들어봤기에 이제 와 그를 비난하는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난다고 하여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다. 해서 그는 익숙하게 매정한 말을 내뱉었고, 악인을 ‘연기’했다. 제아무리 모든 관계를 끊어내기 싫은 그녀라도 이 정도까지 하면 미워라도 할 줄 알았다. 그랬기에 그는 망설임 없이 그럴 수 있었다.
“우현아, 혼자 두고 떠나버려서, 미안해.”
그러나 그의 생각은 틀렸다. 윤 설아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들이 처음 입을 맞춘대로 ‘각본 그대로’ 얘기하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채 우현이 임기응변에 따라 얘기한다고 생각했다. 아아, 곤란한데. 아무것도 담지 않은 녹안이 무심히 바닥을 쓸었다. 공허한 녹안이 주위를 느리게 훑어보다가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연분홍빛의 머리칼을 가진 여성을 응시한다. 여기서는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의 구질구질한 이야기 속에 윤 설아가 포함될 필요는 없다. 그가 늘 언급했듯 그들은 ‘아무 사이’도 아니니까.
“설마 ‘연기’라고 생각해? 진즉에 알았지만, 멍청하네. 내가 말한 건 전부 진심이야.”
이런 식으로 그녀에게 상처를 주면 다시 마주치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녀는 상처를 준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 했고, 그것을 알기에 그는 각오를 다졌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 다시 마주치지 않을 것이라면 거리낌 없이 잔혹한 말들을 내뱉을 수 있었다. 눈물이 많고, 때로는 사람을 귀찮게 굴고, 말도 안 되는 소동에 말려들게도 했다.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주제에 남의 눈치를 보고, 자신의 아픔은 뒷전인 채, 타인을, 그리고 우현을 이해해주려고 노력한 사람. 그녀는 그가 바라지 않았는데 선을 넘어왔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슬픔을 토해내는 그를 달래주었다. 우현은 잠시나마 그녀와 아는 선후배 사이로 남아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은 했었다.
근데, 그건 과한 욕심이잖아. 나 같은 새끼한테 좋은 인간관계는 무슨. 그딴 개소리는 누구 입에서 나온 거람. 자책과도 같은 문장들이 그의 머릿속을 뒤집어 놓는다. 터진 입술 새로 나온 피는 어느새 말라서 굳어 있었다. 그는 손등으로 입술 근처를 쓸었다. 젠장, 더럽게 아프네. 그는 설아에게 등을 돌리며 뒤쪽에 있는 패거리를 노려보았다. 과거는 빛바랜 기억 속에서 바스러질 줄로만 알았다. 이제 와 한 방 먹여보겠다고 찾아와서 엿을 먹이는 것도 좆같은데 관계없는 사람까지 끌어들이다니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다.
“뭐야, 꼴에 여친 보호하는 거냐? 채 우현 웃긴다.”
“지랄한다. 멍청하면 눈치라도 빠르던가, 발전이 없네.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 관계없다고. 한국말도 모를 정도로 지능 수준이 떨어지진 않았는데.”
“뭐, 이 새끼가!!!”
우현은 휴대폰의 액정을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몇 번 놀리더니 이내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진 설아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녀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간신히 서있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험한 말들과 자신을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 그리고 지긋지긋한 연을 끝내자는 매정한 말들이 담긴 카톡이 와있었다. 발신인, 채 우현.
그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질이 나쁜 패거리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지 못했고, 과거의 아픔들이 되살아오는 그녀의 슬픔을 보지 못했다. 오로지 제가 과거에 마찰이 있었던 그들과 그녀가 얽히지 않기를 바라며 제 기준에서 이기적으로 행동했다. 타인을 부드럽게 보호하는 법을 몰랐고, 그럴 배려심조차 없었다. 애매한 관계가 아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몰랐다. 아무 관계도 아니었다면 신경 쓰지 말라고 밀어내고 화를 냈을 것이고, 긴밀한 관계였다면 상처받지 않도록 걱정하지 않게 달랬을 것이다.
「 너 때문에 시작한 애매한 관계가 결국 너에게 독이 된 거다. 원망을 하려면 널 원망해. 애꿎은 나한테 하지 말고. 」
설아는 그 자리를 떠났다. 다시 여린 가슴에 커다란 못이 하나 박히고, 그들의 아슬아슬한 관계는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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