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덧 낙엽이 물들어 가는 시기가 다가왔다. 거리에는 울긋불긋 나뭇잎을 보겠다며 구경나온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가을을 타는지 아니면 예전의 일이 떠올랐는지, 그 거리를 홀로 걸어가는 그의 입가엔 쓴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그의 머리 위로 툭, 하고 낙엽이 떨어졌다. 그것을 손으로 떼어내며 바라보다가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날아가 버리는 낙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가 다시금 바닥을 보며 걷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가 18살이었던 해였으니 벌써 그로부터 7년이나 흐른 셈이었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그를 억누르기엔 딱이었다. 합숙을 제안하며 여행 계획을 짠 것은 다름 아닌 프리드였고, 자신이 조금만 더 일찍 준비해 버스를 일찍 탔더라면 그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고로 살아남은 일행은 자신뿐이었고, 그도 겨우 목숨만 붙어있었다. 나중에 그가 들은 바로는, 자신의 친구들은 그 현장에서 즉사하였다고 했다. 그보다 그를 더 절망의 끝으로 끌어내리는 얘기는 없었다.
“또 엉뚱한 생각하고 있나보지?”
툭, 하고 차가운 캔 커피가 프리드의 얼굴에 닿았다. 갑자기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그가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들자, 아프리엔의 얼굴이 그의 눈동자에 담겼다. 차분한 표정, 아프리엔은 언제나 그랬다. 그런 거 아니야. 그렇게 짧게 대꾸하고는 프리드는 그가 건네는 캔 커피를 받아들었다.
“아니긴. 표정에서 다 보이는데 아니라고 할 셈인가? 아까부터 불렀는데 들은 척도 안 하고.”
적당히 공원 벤치에 자리 잡고 앉은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굳이 무어라 화제를 던지지 않아도 그저 곁에 있는 것으로 괜찮았던 것일까. 딱 이맘 때였지. 그렇게 서두를 올리며 제 몫의 캔 커피를 따서 마시던 아프리엔은 물끄러미 제 손에 쥐여진 것을 바라보는 프리드를 흘깃 보다가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그 때의 일은 너무 마음에 두지 마. 프리드, 결코 네 탓이 아니니까.”
“아프리엔은 알잖아, 그 때 그 사고로 내 소중한 친구를 다섯이나 잃었어.”
그것도 한 날 한시에 말이야. 그렇게 덧붙이고선 그도 캔을 따서 커피를 한 모금 크게 들이켰다. 무언가라도 목 너머로 넘기지 않으면 꾹 참고 있던 울음을, 서러움을, 제 감정을 토해낼 것만 같아서. 그렇게라도 삼켜서 없애야 했다. 그 자신에게 그것을 토해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프리드를 아프리엔은 가늘게 눈을 뜨고선 응시했다. 벌써 몇 년 째 저런 모습을 봐왔다. 평소에는 억지로라도 바쁘게 살면서 잊고 살려고 노력하는 그였지만, 유난히 가을만 다가오면 조금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나빠지지 않았다면 다행일까.
“아프리엔이 그 날 아파서 못 와서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ㅡ.”
“그만.”
자조적으로 그가 내뱉는 말을, 생각나는 것을 여과 없이 토해내는 그의 상태를 보던 아프리엔이 단호하게 그의 말을 끊어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그가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거기까지 해.”
어차피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 사고에 대해 프리드는 너무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것은 주변의 그 누가 도와줘도 해결할 수 없는 그만의 문제였다. 그 언젠가 프리드에게 상담을 권해본 적도 잇는 그였지만, 그것마저 프리드가 거부했었다. 일상생활에도 큰 지장은 없었기에 아프리엔은 결국 더 권유해보지도 못하고 설득하기를 포기했었다. 지난 7년간 그 어떤 얘기를 해도 자신이 알던 그 예전의 프리드로는 돌아오지 못했다. 겉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이만 들어가 쉬어. 피곤하겠다.”
그 말이 아프리엔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무어라 더 말하려던 프리드도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작게 대답하고는 그 뒤로 둘은 각자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허전했다. 제 집으로 가는 길에 여러 사람들을 눈여겨보았던 프리드는 제 곁에 정말로 있어야 할 시끌벅적한 이들이 없다는 것에 입술을 짓이겼다. 차라리 자신을 조금 힘들게 만들어도 상관없으니 다시 이전과 같은 평화가 찾아오길 빌었다. 그 누구보다도 이미 벌어진 일은 돌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무슨 정신으로 집까지 도착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은 채 프리드는 느릿하게 제 집 비밀번호를 꾹꾹 눌렀다. 짧은 신호음과 함께 문이 열렸고, 커튼까지 쳐놔 어두컴컴한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침대에 고꾸라져 그 상태로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침대 옆 서랍 위에는 그 예전, 6명이 함께 찍은 사진이 아직도 액자에 자리하고 있었다.
왜 하필 그 날이었던 거야. 도대체 왜. 끅, 억눌린 울음이 새어나왔다. 이불을 움켜쥐며 설움을 토해내는 그의 등에는 슬픔의 무게가, 죄책감의 무게가 잔뜩 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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