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따라 부슬비는 유난히도 오랫동안 내렸다. 적어도 은월의 기억을 더듬자면 말이다. 초가을에 접어들며 내리는 이 비는 과거의 그 날을 떠올리게 했다. 시기적으로도, 분위기로도 충분히. 은월은 평소보다 더 가라앉은 표정을 지으며 골목길을 걸었다. 바닥에는 움푹 패여 물웅덩이 몇몇이 있었고, 그가 움직일 때마다 빗방울이 튀어 그의 바지 밑단을 적셨다. 손에는 편의점에서 산 컵라면 몇 개가 담긴 비닐봉지가 있었다.


그 누구 씨가 봤더라면 좀 더 몸에 좋은 걸 먹지 않고, 왜 컵라면을 먹느냐며 잔소리를 해댔을 것이다. 비가 오는 탓이었을까. 평소에는 애써 참고 있던 그는 그 잔소리가 조금 그리워졌다. 그 때 내가 조금이라도 늦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어땠을까. 그는 그 생각을 조금도 안 할 수가 없었다. 경찰들이 3년 째 수색하고 있지만, 행방불명된 프리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같이 자취하던 그 집을, 은월은 떠날 수가 없었다. 밤늦게까지 도서관에 있다가 돌아온 것처럼,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 새 그는 제 자취방까지 도착했다. 우산을 접어 대충 현관에 세워두고, 컵라면의 포장을 뜯어 따뜻한 물을 받았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것을, 그는 다 뜯지 않은 컵라면의 뚜껑으로 막았다. 그의 조촐한 식사는 얼마 가지 않아 끝이 났다. 대충 방을 정리하고 나서야, 그는 창가로 다가섰다. 바깥에는 아직도 비가 부슬거리며 지상으로 내려앉았고, 하늘에는 언제 떴을지 모를 달이 어렴풋이 그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저 달 말이야. 빛이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게 마치 꿈꾸는 것 같지 않아?


그가 사라지기 전, 유난히 그 답지 않게 은월에게 그런 얘기를 꺼낸 일이 있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저 듣고 있는 은월에게, 달을 보고 있던 그는 갑작스레 시선을 돌려 은월을 보며 물었다. 너는 저런 달이 뜨는 날이면,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은월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딱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기도 했고, 감성적인 프리드의 모습을 제 기억에 새기고 있어서 그랬기도 했다. 그 때,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을 은월은 이제야 후회하고 있었다. 아니, 프리드가 사라진 그 날 이후부터.


“프리드, 난 말이야.”


옆에는 더 그 대답을 들을 이는 없었다. 아, 그래. 분명 저 달의 빛에 취한 것일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혼자서 중얼거릴 이유는 없었다.


“난 저 달을 보고 있으면, 내게 부족한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야. 늘 있어서 좋았고 바라보던 달인데, 너와 함께 보면서 특별해졌고 이제는 안 보면 허전할 정도로. 전보다 더 큰 존재가 된 것 같아. 달을 보면서 널 떠올려. 그리고, 언젠가는 널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어.”


혼자 말을 마친 은월은 창가에서 떨어져 뒤돌아섰다. 더 보고 있다가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기에.


-그래, 그렇구나.


바람결을 따라, 갑자기 프리드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만 같았다. 은월은 깜짝 놀라 뒤를 바라보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달빛만이 검푸른 하늘을 적시고 있었다. 그래, 너는 거기에 있구나. 은월은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달을 보고 있으면 언젠가는 프리드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은월의 머릿속에 피어올랐다.

Posted by 가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