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이번에도 몰래 바에 친구 한 명을 데리고 갈까, 해서 가게에 들어섰더니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카시아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심하게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앗, 들켰나. 그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니 그녀는 그의 옆으로 다가와서는 진한 흑발을 흩트리며 입을 열었다.
“설마하니 저번 축제에 네가 가게 문 따고 들어온 것도 모를 줄 알았냐?”
“아니, 그게… 죄송합니다, 사장님.”
“됐고, 이거나 받아.”
“예?”
긴장에 당황을 하는 바람에 절로 깍듯한 존댓말을 썼다. 갑자기 그녀가 내민 작은 상자에 카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것을 줄 리가 없기에, 이게 무엇이냐는 표정으로 바라보니 한 마디 덧붙인다. 누가 전해달라고 부탁하더라. 그 천마가 누군데요? 몰라, 이름을 안 밝히던데. 녹색 머리에, 날개가 세 쌍인 천사였어. 그 말에 카시아는 아, 하고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몽블랑, 그녀구나. 가게까지 찾아왔다는 것은 어디서 일하는지 안다는 이야기인데, 보지 않고 갔다는 사실에 못내 아쉬움이 묻어났다. 작년, 축제를 마지막으로 보내고 계속 마음에 걸렸던 참인데.
그는 상념을 접고, 우선 상자를 열어보기로 했다. 상자를 열자, 예쁜 브로치가 하나 있었다. 누군가가 직접 만든 것으로 보이는, 어여쁜 브로치. 홍옥과 그 주변의 검은 리본은 열매처럼 보였고, 연두색의 포인트는 잎사귀를, 마지막으로 그의 눈동자를 상기시키는 연보랏빛 리본으로 만들어진, 정성이 느껴지는 물건이었다. 홍옥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고 했던가. 한참 취미를 찾는다고 찾은 것이 보석에 대한 것이었으니, 우연찮게 알 수밖에 없었다.
“참, 전해달라는 말도 있었다.”
「함께 하지는 못하겠지만, 추억의 매개는 남겨놓을 수 있을 것 같아두고 가는 거란다.」
오랜 바텐더 일로 조금의 물집이 잡힌 것 외에는 크게 상처가 없는 손으로 브로치를 매만진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는 낮게 픽, 하고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놓고 가면 분명 어떤 순간이 와도 죽지는 않겠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겠지. 소중하게 간직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곧 브로치를 다시 상자에 넣고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원래 돈을 좋아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었고, 가게를 차리고 싶어서 그랬던 영향이나 물욕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하나, 이것은 누구도 손대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대상에 그의 어머니는 제외가 되겠지만.
*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가게를 열겠다던 카시아는 바텐더 일을 그만두었다. 342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참가한 축제 이후 바에서 일어난 사건-예의 진상 손님이 폭력사태를 벌였으나 다행히도 사장에 의해 단숨에 제압되었던-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다니기 시작했고, 제 트라우마를 극복한 이후에는 일을 그만두고 어머니의 길을 걷기로 했다. 물론 자유로운 그의 성격상 기사단에 들어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녀의 의지를 이어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그런 길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전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그는 능력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오로지 순수하게 어머니에게 훈련받아 쌓은 기술들이다.
의외의 결정에 어머니는 놀랐지만 반대하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아픔을 제대로 마주하고, 극복하려는 아들의 길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워했다. 그는 강해졌고, 길을 떠났다. 브로치를 상징처럼 달고 다녔고, 근처에서 혹여 브로치에 흠이라도 나지 않게 도와주는 물건을 구입하기도 했다. 괜찮은 일행들로 구성된 용병단에 들어갔고, 그들에게도 브로치는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물론, 늘 그랬듯 장난스럽게 그들의 손등을 탁, 때리면서 능청스럽게 얘기한 것이지만.
“어허, 이건 함부로 손대는 물건이 아니야~. 얼마나 값어치 있는 거라고?”
“하여튼 델타 저 녀석은 저거에만 꼭 저런다니까.”
꺄르르.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렸다. 카시아는 고개를 홱 돌렸다.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주 잠시지만 분명 웃음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익숙했고, 분명 그렇게 웃을 리가 없는 이의 목소리였다. 예상은 했지만 진짜 소중하게 대해주는구나. 기뻐, 아가. 잘 있으렴, 사랑한다. 이제는 평안한 종장을 맞이했을 그녀가, 신의 곁으로 영원한 안식을 향해 가기 전 그에게 잠시 들른 것일까.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카시아는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할 뿐이다.
‘착각, 인가…?’
착각이었더라도 좋았다. 그런 웃음소리를 실제로 들었다면 더 좋을 텐데. 브로치를 한 번 만져보던 카시아는 픽,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혼자 낮게 중얼거린다. 똑똑히 지켜봐, 난 당신 말대로 강해졌으니까.
영원한 건 없지만 익숙함에 소중함을 잃지 않기를.
/헤르만 헤세, 데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