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찬장에서 찻잔을 내리고 있던 아스테르가 시선을 리오르에게 돌리며 물었다. 잠시 그의 손이 멈추었다가 다시 달그락 소리를 낸다. 주전자에 있는 물이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끓기 시작한다. 딱 차를 우려내기 좋은 온도가 되자 찻주전자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가 담긴다. 거름망 안으로는 찻잎이 낙엽 마냥 떨어진다. 찻주전자의 뚜껑을 덮고 쟁반 위에 찻잔과 함께 둔다. 접시에는 귀여운 모양의 다과도 올라간다. 오후의 티타임을 즐기기 위해 상을 내어가는 아스테르는 리오르가 한참 동물 책을 보고 있는 거실로 향했다. 리오르는 제 연인이 오자 고개를 올려 그를 바라보았다.

“응! 리오르~ 이 동물들 동물원에서 본 적 있거든~.”

리오르의 시선이 다시금 책으로 향한다. 아스테르가 그의 표정에서 씁쓸한 표정을 본 것은 분명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가 동물원을 간다면 어릴 적일 것이고, 분명 보호자가 있었을 테니 제 양어머니인 실리아를 떠올렸을 것이리라. 달각. 아스테르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찻잔에 찻물을 따른다.

“그래? 난 동물원에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어땠어?”
“정말? 아스는 한 번도 동물원 안 가봤어?”

잠시 정적이 흐른다. 아스테르는 찻주전자를 내려두고 입가에 가볍게 미소를 걸친다. 어릴 적에는 살기에 급급했고, 크고 나서는 굳이 그런 곳에 혼자 갈 이유가 없었기에 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리오르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과자 하나를 집어 입에 넣고는 우물거린다. 맛있어어~!! 아스가 만들어준 과자가 최고야아~! 언제나 기운이 넘치는 모습을 보며 아스테르는 작은 웃음을 자아낸다. 천천히 먹으라는 말과 같이 차를 마시고, 다과를 먹으며 오후의 티타임을 즐긴다. 그것이 그들의 소소한 일상이니까.

*

그로부터 며칠 정도 지났을까. 아스테르가 잠을 청하기 위해 침실로 향하자, 이미 침대 한 편을 차지하고 있던 리오르가 얼른 오라며 제 옆자리를 팡팡 두드렸다. 그의 손에는 새로운 동화책이 하나 들려있었다. 최근 도서관에 새로운 도서가 들어와서 정리한다고 사서들이 정신없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들어온 책이었다. 아스테르는 그의 앉아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댄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동화야?”

아주 살짝 머리칼이 닿았다. 아스테르의 심장이 아주 잠시지만 간질거린다. 스탠드 덕에 은은하게 방을 비추는 색의 온도가 따스해서 간지러운 것이다.

“오늘은~ 밤하늘을 지키는 별지기 고양이 이야기야~! 아주 옛날에~….”

나긋하지만 귀여운 동화책에 어울리는 목소리. 아스테르는 줄곧 이 시간을 좋아하고는 했다. 단순히 어릴 적에 동화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하느냐면 그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동화책을 읽어주는 연인을 보는 것이 즐거운 탓이다. 동화에 집중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똑똑히 듣고 있다. 그 분위기에 피어나는 아름답고 따스한 온도를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그래서 여행자는 별지기 고양이에게~… 어라아~?”

리오르는 책 페이지를 한 장 넘기다가 잠시 동화 읽기를 그만두었다. 목소리가 끊기자 아스테르도 잠시 의아한 눈빛을 했다. 그는 리오르가 시선을 멈춘 곳을 바라보고서는 머지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무언가의 티켓 한 장. 아스테르가 새 책인데 이런 게 꽂혀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순간, 리오르가 티켓을 집어 확인했다. 동물원 입장권이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아스가 착해서 선물주고 갔네~. 뭘까아아~~.”

평소라면 주인을 찾아줘야겠다는 얘기부터 먼저 할 터인데 이런 얘기를 먼저 하는 것을 보면 분명 이 작은 이벤트를 준비한 것은 리오르일 것이다. 불과 며칠 전에 동물원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으니 더욱 확실하다. 아스테르는 그 모든 상황을 알아차렸지만 일부러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르는 척을 했다. 아주 약간의 짓궂은 질문을 던지기는 했지만.

“지금은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으음~ 그럼….”

리오르는 잠시 말문이 막힌 채 고민을 했더랬다. 이미 다 들켰는데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아스테르의 눈에는 마냥 귀여워보였다. 이내 그는 손뼉을 탁, 치며 아스테르가 내놓은 질문에 답했다.

“크리스마스에도 또 주실 거래~. 이건 서비스~.”

그렇게 해맑게 웃는 모습이 어찌나 어여쁘던지. 아스테르는 산타 할아버지에게 감사하며 재밌게 놀다 오자고 했고, 그렇게 그들의 주말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아스테르에게 처음 와 본 동물원이 신기하기는 했지만, 얼굴에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익히 사진을 통해 봐왔던 풍경이고, 크게 놀랄만한 무언가는 없었으니까. 어째 이곳에 온 리오르가 더 신나보였지만, 아스테르는 그가 기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동물원 지도를 든 채 보고 싶은 동물이 있는 쪽으로 아스테르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모든 것은 아스테르가 ‘루는 무슨 동물을 좋아해?’라고 물어서 벌어진 일이지만.

그렇게 도착한 곳은 기린이 있는 곳이었다. 확실히 기린은 놀랄 정도로 목이 길었다. 그런 기린을 따라하려는 듯 리오르는 목을 쭈욱 늘려보려고 애썼다. 아스테르가 쿡, 하고 웃자 리오르가 그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리오르 어렸을 적에 이렇게 따라했었거드은~. 그 말에 아스테르는 잠시 상상해보았다. 어린 제 연인이 동물원에 와서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을 따라하는 모습을 말이다. 분명 그 때는 더 귀여웠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스테르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사진 찍을래? 루가 좋아하는 동물이잖아.”
“응, 찍을래, 찍을래에~!!!”

그들은 각자 독사진을 찍어주고 팔을 쭉 뻗어 셀카도 찍어보았다. 그러나 역시 셀카로는 풍경이 다 담기지 않아 아쉬워하던 찰나에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하여 사진을 찍었다. 마침 부탁을 받은 사람이 유명한 사진작가였다. 운이 좋았다고나 할까, 어디로 보나 달달해보이는 커플의 사진을 그는 멋지게 담아놓고 오랫동안 예쁜 사랑하라며, 그의 명함을 건넨 후 자리를 떴다.

사진도 찍고 충분히 구경하고 나자, 아스테르가 다른 동물을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리오르는 더 이상 어릴 적에 그랬던 것처럼 동물들이 같이 우리의 철창을 잡고 얼굴을 꾸우욱 누르지도 않고, 울상이 되어 철창을 잡고 매달리지도 않았다. 대신 연인의 커다란 손을 잡고 다른 동물을 구경하러 갈 뿐이다.

다음에 구경하러 간 것은 하마였다. 하마도 좋아해서 종종, 하마를 따라 입을 떡 하니 크게 벌려보려 한다나 뭐라나. 물론 잘 되지 않아서 아스테르가 웃음을 터트리고는 했지만.-그는 제 연인이 귀여워서 웃음을 터트린 것이다.- 다른 동물을 보러 가던 도중, 동물 모양 풍선을 나눠주는 호랑이-인형 탈을 쓴 직원이다.-에게 풍선도 받아 각자 하나씩 손에 쥐고 다른 동물을 구경하러 가기도 했다.

“아스, 저 멋쟁이 동물은 동물의 왕 사자야…!”

사자는 제 멋진 갈기를 뽐내고 있었다. 분명 지식 면에서는 아스테르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터지만,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리오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아스테르가 동물원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그가 자신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기 위해 책을 열심히 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물론 처음에 그는 동물원 이야기를 해서 동물들이 보고 싶었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악어를 보러가서도 ‘수영 잘해서 부럽다아~. 악어새라고 친한 친구도 있는데~~.’ 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5월의 동물원은 다소 더웠기에, 그들은 중간에 벤치에 앉아 쉬면서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했다. 부드러운 소프트 아이스크림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서로 다른 맛을 골라 바꿔서 먹기도 하며 말이다. 그렇게 쉬고 나서는 돌고래 쇼를 보러 가기도 했다. 혹시나 물에 젖을까봐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돌고래가 재주를 부리는 모습도 보았다.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비치볼을 튕기거나, 물을 박차고 뛰어올라 훌라우프를 통과하기도 했다. 관객석에서는 높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쇼가 끝난 이후, 아스테르와 리오르는 들어온 건물 내부의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이 건물에서는 돌고래 쇼가 관객을 불러 모으는 탓에 돌고래 인형이라거나 휴대폰 고리와 같은 각종 돌고래 물품이 있었다.

“응? 루, 돌고래 인형 가지고 싶어?”

아스테르는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다가 리오르가 한 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아스테르의 말이 마치 마법처럼 리오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리오르, 돌고래 인형 가지고 싶어…!”
“그래? 그럼 어떤 돌고래가 제일 예쁜지 볼까? 루가 가지고 싶은 거 골라봐.”

평소에 리오르가 물욕이 없는데다가 무언가를 사달라고 하는 일은 적어서인지, 아스테르는 흔쾌히 사준다고 얘기했다. 연인이 가지고 싶다고 하는데 무엇인들 못 해주리. 리오르는 신중하게 살피더니 인형 하나를 꼭 끌어안고 아스테르에게 다가왔다.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모습을 보고 아스테르는 살풋 웃음을 터트리고는 그것을 계산하고 나왔다.

품에는 인형을 끌어안고, 한 손에는 풍선을 들고 있던 리오르가 아스테르를 보며 물었다.

“아스는 보고 싶은 동물 없어어~?”

아스테르는 잠시 고민했다. 평소에 동물을 크게 좋아하는 편도 아닌데다, 별 달리 관심을 두지 않아서일까.

“그럼 나는….”

그러나 이내 떠올랐는지 그는 리오르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그렇게 보러 간 동물들은 토끼나 양, 사슴. 토끼에게 가서는 풀을 먹여보기도 하고, 털이 복실복실한 양을 보기도 하고 사슴을 구경하기도 했다. 애인 밖에 모르는 그가 생각한다면 무얼 생각하겠는가. 연인과 닮은 동물 외에 다른 것은 없을 것이다.

“있지, 루. 오늘 이렇게 동물원에 데려와줘서 고마워.”

돌아가는 길, 노을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마주 잡은 손은 유난히 따뜻했다. 다정한 대화, 즐거운 추억은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씩 더 새겨질 것이다.

“리오르도 오늘 즐거웠어어~! 아스, 사랑해에~!”
“응, 나도 사랑해, 루. 다음에도 우리가 못 가본 곳으로 데이트 가자?”

아마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추억들이 아로 새겨질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더 단단하게 이어줄 것이다. 지금 맞잡은 손처럼.

'::자캐:: > SIA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앤캐의 사소한 것(43제) - 아스테르  (0) 2018.07.10
[시애/2주년/마법소년AU]  (0) 2018.06.27
[시애]마녀와 소년  (0) 2018.03.18
[시애/늦은 화이트데이]약과 초콜릿  (0) 2018.03.17
[시애]Aster's Diary  (0) 2018.03.09
Posted by 가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