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읽기 전에! AU인 만큼 성별 반전과 캐붕(...)에 주의해주세요.




마을에 가뭄이 들었다. 올해로 벌써 3년 째. 비가 내리지 않는 땅은 급속도로 메말라갔고,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굶주림에 쓰러져갔다. 영주들은 메마른 땅의 상황을 돌보지 않고 무지막지한 세금을 걷었고, 더 이상 낼 것도 없는 그들은 영주에게 청탁하여 곡식을 빌렸고, 그 대가로 추후에 어마어마한 이자가 그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마을 사람들은 점점 지쳐갔고, 이 모든 일을 ‘마녀’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점점 미쳐가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걸어서 1시간 떨어진 숲이 있었다. 그 숲은 예로부터 마녀가 산다고 알려진 숲으로, 그 숲에서 길을 잃고 실종된 이들도 많았으며, 기이한 것을 보고 사색이 되어 돌아온 자들도 많았다. 마녀를 본 이들은 아무도 없었으나, 숲을 불태우려고 하다가 된통 당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그들은 아무리 마녀가 자신들에게 해를 입힌다고 생각해도, 마녀를 직접 죽이러 들어가지는 못했다.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지? 이대로 죽을 수는 없잖아. 그래, 제물을 받치자. 제물을. 누굴 받칠까. 그 아이는 어때. 죽이자. 죽이자. 마을에 해만 끼칠 거야.

한 번 시작된 사람들의 생각은 겉잡을 수없이 커져만 갔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소년은 어른들의 온갖 폭력에 얼굴 이곳저곳이 상한 채로 숲으로 질질 끌려갔다. 허름한 누더기는 흙바닥에 굴러 누런색이었고, 보온은 전혀 되지 않을 것이 뻔한 데다 너덜너덜 찢어져 있었다. 손과 발, 다리, 얼굴에 난 상처들과 곳곳에 묻은 흙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신발 하나 제대로 없어 발바닥과 발끝은 끔찍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소년이 제물로 끌려가기 싫어, 발버둥 치는 바람에 맞은 얼굴은 퉁퉁 부어 그 몰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씻지 못해 부스스하고 정리를 하지 못한 산발인 밤색 머리칼은 형편없는 색이었다. 봐줄만한 것이라고는 고작 빛을 잃지 않고 빛나는 금안이 전부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소년이 발이 아프다고 생각할 즈음에 커다란 숲은 바로 코앞에 있었다. 그제야 두려움이 올라왔다.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잔혹한 어른들은 소년의 등을 떠밀었다. 아이가 혹여 다른 곳으로 도망이라도 갈까봐, 밭을 일굴 때 쓰는 낫과 호미를 들고 와서는 위협적으로 들어보였다. 소년이 도망갈 곳이라고는 오로지 숲뿐이었다. 발바닥이 아팠지만 신경 쓸 수 없었다. 당장 눈앞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숲으로 뛰어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에 앉아, 소년이 다시 되돌아 나오는지 한동안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참으로 잔혹한 이들이었다.

소년은 그것도 모르고 눈을 질끈 감은 채 계속 뛰었다. 죽고 싶지 않아, 왜 나는 이런 일을 겪어야 해? 나도 맛있는 빵이 먹고 싶은데. 부모님이랑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그렇게 생각할 즈음에 소년은 차마 제 앞의 돌부리를 보지 못하고 그곳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흙바닥에 그대로 넘어진 탓에 무릎이 까지고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소년은 그 자리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숲 속의 새들이 그 모습을 보고 작게 노래했다. 누군가에게 이 소식을 알리기라도 하듯.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울고 있는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왜 여기서 울고 있어?”

소년의 울음이 뚝 그쳤다. 여전히 두 눈에는 작은 눈물들이 맺혀있었지만 말이다. 소년의 금안에 비친 어느 여성의 모습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반묶음인 부드러운 베이지 색의 머릿결과 자신과 비슷한-그러나 조금 더 따스한 햇빛을 닮은 금안에, 깔끔한 치마-아마도 원피스인 것으로 보였다.-와 그 위에 난색 계열의 망토 후드를 두르고, 손에는 약초를 한 가득 담은 것으로 보이는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소년이 대답도 없이 멍하니, 여성을 바라보고 있자 아이의 상처를 발견한 그녀가 다급하면서도 가까이 다가와 작은 상처들을 돌보았다.

“어떡해…! 많이 다쳤잖아? 괜찮아…?”

언제 이곳으로 온 것일까. 울고 있어서 정신이 없었다고 해도 그녀가 다가오는 인기척은 느끼지 못했다. 소년은 어렴풋이, 이곳에 있는 그녀가 마녀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전혀 잔혹한 짓을 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외모에, 상냥한 말투, 그리고 제 힘을 이용하여 상처들을 치료해주는 모습까지. 오히려 이곳이 더 안락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의 손에서 맴도는 작은 빛 알갱이들이 소년의 피부에 녹아들어 여태 생겼던 모든 상처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누나가, 마녀예요?”

작은 체구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 맑고 청아한, 그런 목소리는 마녀에게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두려움도 그 어떠한 불순한 것도 섞이지 않은 맑은 눈동자가 마녀를 올려다보면, 그녀는 화답을 하듯 햇살처럼 웃어준다.

“응, 리오르는~ 마녀님이야-. 아가는 이름이 뭐야~?”

그녀의 조금 늘어지는 말투에 소년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렇지만 그 마저도 온기를 머금고 있다면 소년이 기댈 곳으로는 충분했다. 소년은 마녀 리오르의 옷자락을 꾹 쥐었고, 무언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아스테르. 아스테르예요.”




*




오랜 세월을 산 리오르에게는 아스테르가 당돌하게 보였을까. 제 이름을 밝히고 무작정 여기에서 살게 해달라니. 마을로 돌아가기 싫다고 얘기하면서 보내는 애처로운 눈빛에 그대로 아이를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척 봐도 숲에서 다친 것으로 보이는 무릎을 제외하고 아이의 상태가 엉망이었으니, 이곳에서 마을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데려오기는 했지만. 마녀와 인간은 본디 수명이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그녀는 정이 들까봐, 그것이 조금 무서웠다. 마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녀의 품에서 잠이 든 소년을 보고 그녀는 낮게 웃었다.

“잠깐이면 괜찮겠지~. 잘 자, 아스-. 별처럼 예쁜 꿈 꿔어~.”

부드러우면서도 나직한 목소리는 축복이 되어 소년에게 머물렀다. 집으로 돌아가면 할 일이 많은 걸~. 우선 아스에게 줄 옷도 만들고~ 맛있는 것도 먹이고-. 씻기기도 해야 할 거고, 머리 정리도 해줘야겠네…! 오랜 시간을 인간과 교류하지 않고 살아간 탓인지, 아스테르의 등장에 리오르는 꽤나 신이 난 모양이었다. 복잡한 뒷 이야기는 나중에 생각해도 될 일이다. 만약, 이 아이에게 정이 들어버린다면 그 때는. 리오르는 싱긋 웃었다. 소년이 깨어나기 전까지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곤한 잠에서 깬 소년은 그 이후에 하나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부스스하고 엉망인 머리칼을 깔끔하게 다듬고, 욕조에 들어가 기분 좋은 향이 나는 물에서 목욕을 하고. 그대로 욕조 바깥으로 나오니 비단으로 만들어진 새 옷을 갈아입고 식탁에 앉아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이런 것을 생각하고 이곳에서 살게 해달라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스테르는 난생 처음 받아보는 따스한 손길에 여느 때보다 더 밝게 웃었다.

그 이후에 아스테르는 웃는 날이 더 많아졌다. 어머니나 마찬가지인 리오르에게는 ‘루’라는 애칭까지 지어주며 잘 따랐고, 같이 약초를 따러 가거나 그녀의 치마폭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는 등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많은 사랑도 받았다. 한 번은 리오르의 서책에 관심을 갖길래 그것을 읽게 두니, 책의 내용을 일주일 안에 외워버리는 바람에 약초학에 대해 가르치기도 했다. 어렸던 소년은 어느 새 자라, 리오르의 키도 훌쩍 넘어버렸고,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이제는 예전에 쓰던 존댓말도 쓰지 않게 되었고.

“루, 이거 봐! 오늘은 동쪽 숲까지 나갔었는데 이제껏 루가 찾던 알라하 초가 있더라!”

자랑스럽게 자신이 캔 약초를 보여주고는 이내 그녀를 안아 부빗거리던 아스테르는 귀 끝이 살짝 붉어졌다. 자연스럽게 가족의 정, 이 든 것이면 참으로 좋겠지만 아스테르의 가슴 한 구석에 피어난 감정은 그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런 감정을 가지고 짝사랑을 시작한지도 벌써 몇 년 째다. 덩치 큰 대형견이나 마찬가지인 그는 평소에도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짝사랑 중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아스 대견하네에~. 이젠 수제자 졸업하고 리오르랑 같이 약초 만들어도 되겠다아~!”

그런 아스테르의 마음도 모르고 그의 등을 쓸어주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아스테르의 눈에는 평소와 다르게 보였다. 무언가 고민이라도 있는 것인지 걱정된 탓에, 아스테르는 먼저 그 품에서 떨어져 리오르의 표정을 살폈다. 그녀는 담담한, 그리고 무언가 결심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루, 혹시… 할 말 있어?”
“아스는 눈치도 빠르다니까~. 오늘 중요한 얘기 하나 할 건데, 들어줄래, 아스?”

당연하다는 듯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리오르는 만족한 듯 웃고는 그의 손을 붙잡고 집 안으로 향했다. 그와 시간을 같이 한 지도 오래. 정이 안 들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리오르의 생각보다 정이 훨씬 더 많이 든 탓이다. 아니, 이걸 ‘정’이라고 분류할 수 있을까? 그것 외에 다른 감정이 섞인 것은 아니고? 그것은 분명 아스테르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결연한 그녀의 표정에서, 아스테르는 뭔가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리오르에게 배워서 알게 됐듯 마녀와 인간의 수명은 다르다. 혹여 그런 것에 대한 얘기가 아닐까, 어림짐작을 했다.

“아스한테 리오르 숨을 나눠주고 싶어서! 마녀의 숨은 딱 한 명에게 영생을 같이 살자~ 하고 나눠주는 거야!”

그러나 뒤이어 나온 말은 의외의 것이어서 아스테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걸 왜? 반갑기 이전에 그런 것을 제게 준다는 놀라움과 이제 그녀와 같이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아스테르의 표정은 놀라움에서 기쁨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스테르는 고맙다고 얘기하려고 했다. 물론 그가 입을 열기 전에 그녀가 먼저 이런 말을 덧붙였지만.

“이건~ 리오르가 아스를 너~무 사랑해서 주는 거야! 이제까지 키운 사람이 아니고 리오르의 반려자로서~? 그러니까 리오르 숨 받아줄 거지?”
“루가? 정말?”

이렇게 하루에도 두 번 씩이나 놀라게 할 일인가. 아스테르는 이내 리오르를 확 끌어안았다. 원래 주인 말을 잘 듣는 대형견의 성격이라 그렇게 세게 끌어안지는 않았지만. 열이 올라서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것이리라.

“응……. 나도 루 사랑해. 마녀님의 숨을 준다면 기꺼이 받을게. 평생 옆에 있어 줄게.”

그 모습이 귀여운지, 리오르는 아스테르의 머리칼을 헤집듯 쓸어주다가 그의 양 볼을 감싸 올리고는 제 숨을 나누어주었다. 자신의 영생을, 함께 할 반려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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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가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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