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 월드에는 소문 자자한 대도둑, 괴도 팬텀이 있었다. 혼란스러운 시기일수록 이런 이들의 무용담은 작은 마을까지 곳곳에 퍼져나갔다. 메이플 월드에 있는 진귀한 재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타나 그것을 훔쳐 달아나고는 했다. 화려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을 좋아하는 그였기에, 등장할 때는 화려하고 퇴장할 때는 밤에 몸을 숨겨 빠르게 모습을 감추고는 했다. 그런 그에 대한 소식이 어느 순간부터 들려오지 않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괴도 팬텀에 대한 존재를 잊었다. 다만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의 행방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그의 ‘죽음’에 대해서 슬퍼할 뿐이었다.
대마법사라 불리는 자가 팬텀을 찾아왔었다. 혹시 자신과 손을 잡아 세상의 어둠과 맞서지 않겠냐면서 말이다. 그것은 괴도인 그에게 썩 달가운 제안은 아니었다. 그는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었고, 위험한 일에 부러 몸담고 싶지 않았다. 돌려줄 대답은 단호한 거절이었다. 그 말에, 대마법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혹여 생각이 바뀐다면 찾아와달라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팬텀은 그의 그 행동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비웃었다. 그리고 얼마 뒤, 팬텀은 에레브에 있는 보물에 대해 들었다. 구미가 당긴 그는 그 즉시 에레브로 떠났다.
그곳에서 괴도는 여제를 만났다. 우연한 만남-아니, 실제로는 필연적인 만남이었다. 그는 몇 번의 만남 끝에 ‘에레브의 보물’은 그저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한 말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그가 걸음을 끊지 않는 것은 에레브의 여제인 아리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녀가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거짓 소문을 퍼트린 것처럼 그 또한 ‘에레브의 보물’을 받기 위해 이곳에 온다는 거짓을 내세웠다.
“검은 마법사의 군단장과 회담을 갖기로 했어요. 이곳 에레브에서. 좋은 결과가 있어야 될 텐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여제를 방문한 괴도는 뒤돌아선 그녀의 뒤로 천천히 걸음을 내딛다가 우뚝 멈춰 섰다. 세상의 평화는 전혀 그와는 상관없는 일로만 치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평화를 유지시키려 하는 중심에 여제 아리아가 있었다. 그간의 만남이 즐거워, 어리석은 괴도는 그것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는 애써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미소 지었다. 가면을 쓴 것처럼 표정을 숨기는 것은 제법 익숙했다. 웃지 않는 여제에게 웃음을 가져다 줄 이는 다른 이가 아닌 팬텀 본인이었다. 그랬기에 웃었던 탓도 컸다.
“그렇게 우울한 표정만 지으면 빨리 늙는다? 당신은 웃는 얼굴이 제일 잘 어울려.”
팬텀의 손에서 카드는 한 송이의 장미로 바뀌었다. 그것을 건네주자 여제는 웃음을 되찾았다. 그것에 만족했다면 팬텀은 아마 지금쯤 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불안한 느낌이 마음에 걸려, 팬텀은 회담이 있는 날 몰래 에레브에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머지않아 열린 회담에서 괴도는 처음으로 군단장이라는 이들을 보았다. 어떻게 보면 작은 어린 아이 둘이었다. 남매로 보이는 두 명의 군단장을 보며 팬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겨우 저런 꼬맹이들이 세상을 뒤흔들어 놓은 검은 마법사의 수하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이 곧 ‘믿기는 일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회담은.
“위험해! 아리아!!!”
함정이었다.
“팬텀?”
푸욱-. 깊게 들어오는 날카로운 쇳덩이의 느낌과 훅 올라오는 비릿한 향. 바닥으로 떨어지는 수만 송이의 붉은 꽃. 제 철을 모르고 피어난 꽃은 비극을 불러오고, 어지러이 흩어지는 목소리들마저 이내 흐릿해져갔다. 성공할 뻔 했는데 네가 방해했어! 그리고 그 와중에 선명히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확연히 알 수는 없었지만, 괴도는 어림짐작으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 수 있었다. 빙의를 해서 여제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초라하고 허망하게 죽이려는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팬텀의 목소리에 무너졌다.
오르카를 방해했으니까 죽어버려! 날카로운 군단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팬텀은 그 소리를 듣는 것이 고작일 정도였다. 하하, 천하의 괴도 팬텀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다니.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분명 뒤에서는 여제가 그를 걱정하고 있을 테지만, 다른 이들이 온다고 해도 그 때는 이미 괴도는 세상을 뜬 이후일 것이다. 조금 더 목숨을 늘리느니, 차라리 확실하게 여제를 지키고 죽는 것이 나았다. 그래서 그는 그 길을 선택했다.
그는 끝끝내 말하지 못했다. 사랑해서는 안 될, 여제를 사랑했노라고. 에레브의 기사들과 신수의 보호 아래, 여제는 목숨을 건졌고 군단장들은 혀를 차며 모습을 감추었다. 그들이 오기까지 여제를 지킨 괴도는 그렇게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괴도의 죽음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고, 세상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여제를 주축으로 대마법사가 모은 동료들이 힘을 모았다. 오직 여제만이 단 한 명의 희생을 가슴에 새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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