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때가 온 것 같군요.”
차가운 달빛이 빈 천장을 통해 그들의 거처, 가장 바닥까지 살포시 내려앉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이었던가. 그곳에 홀로 서있는, 아니, 홀로 서있었을 터인 백발의 남자는 살짝 긴장된 모습이었다. 겉으로 티가 잘 나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동안 그를 곁에서 지켜봐온 그녀라면 충분히 느낄 수 있었을 테지. 무심한 검푸른 눈동자가 천천히 깜빡이며 그를 응시했다.
이른 새벽이면 작전이 시작될 것이다. 반정부 혁명군인 ‘오로라’는 이 순간을 위해 살아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상적인 세계를 위해 제 이름을 버리고, 과거에 연을 맺었던 이들과의 모든 인연을 끊은 채 이곳에 발을 디뎠다. 잘하면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이 그들이었다. 그들의 정상에 서서 지도하는 ‘하얀 마법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이름은 사치였다. 오로라의 사람들끼리도 서로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뒤늦게 합류한 ‘용병’도 그들을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지금 시간이라면 조금은 숙면을 취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작전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자두는 편이 좋지 않습니까, ‘용병’?”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등 뒤의 인물에게 말을 건넸다. 인기척을 분명 내지 않았을 텐데. 그의 그런 행동은 그녀로 하여금 역시 그가 보통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달빛이 닿지 않는 그러한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다, 발걸음을 조금 내딛으며 그에게 물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러는 너야 말로. 시간이 늦었다. 조금이라도 자지 그래, ‘하얀 마법사’?”
“이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려고 온 건 아니겠지요. 저한테 다른 할 말이라도 있으신 모양입니다만.”
제일 늦게 오로라에 합류했으면서도 하얀 마법사의 깊은 신뢰를 얻은 용병,그의 옆에 가장 오랫동안 머문 사람. 그랬기에 그는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하얀 마법사의 신뢰와는 별개로 오로라의 다른 일원들은 그녀를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허나 용병이 언제 그런 것에 크게 신경을 쓰던가. 그의 말에, 그녀는 못 이기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직설적으로 물었다. 돌려 말하는 것은 영 그녀의 성미에 맞지 않았으니 말이다.
“만약, 작전이 비틀리면 어떻게 할 셈이지?”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걱정이 많군요.”
“정부군을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저희도 충분히 힘을 길렀습니다. 얕보지도 않았지만 뒤처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어.”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습니다.”
“내가 배신할 지도 모른다면?”
“………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반박하던 하얀 마법사는, 마지막 질문만큼은 대답하지 못했다. 돌아온 것은 의문 섞인 목소리뿐. 항상 차분하던 평소와 달리, 그의 목소리와 눈동자는 살짝 흔들렸다. 동그랗게 눈을 뜨며 용병을 바라보았지만, 그녀에게선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당황함에서 벗어나질 못한 그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트리며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나갔다.
“‥어째서 그런 얘길 하셨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혹시, 말리려는 겁니까?”
애써 침착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는 어쩔 수가 없었다. 반정부 혁명군의 리더라는 게 이렇게 사사로운 감정에 잘 휩쓸리다니. 용병은 속으로 혀를 차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로 위험하단 뜻이야. 마음 같아선 말리고 싶지만…”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이 약해지기는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입술을 잘끈 깨물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하얀 마법사와 있으면서, 너무 무뎌진 탓일까. 항상 냉정함을 잃지 않던 그녀조차도 사람이었을까.
“‥멋대로 생각해. 그럼, 잘 자라.”
자신이 내뱉은 말에, 스스로가 불편해졌는지 그녀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당장의 심정 같아서는 하얀 마법사도 그녀를 붙잡아 묻고 싶었지만, 언젠가는 말해주겠거니 싶어 그녀를 잡지 않았다. 어차피 잡는다고 해서 알려줄 것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부디 작전이 성공하길.”
*
거센 불길이 온 건물을 뒤덮었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게 언제였었지. 무참히 끊겨버린 통신은 그로 하여금 최악의 상황을 연상케 했다. 금방이라고 끊길 것만 같았던 통신기 너머에서는 동료들의 비명 소리, 날카로운 금속이 부대끼는 소리가 폭발음 소리에 파묻혔다. 통신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마 승산이 보이지 않았기에, 정부군의 나머지 인원과 ‘자폭’을 선택한 것이리라. 역시, 어제의 충고를 새겨듣는 편이 좋았을까요. 잠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지만, 그는 희미한 미소를 띠웠다. 어차피 이름을 버린 순간부터,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은 끝난 것이라고 스스로 말해놓고선 이제 와서 죽음을 두려워하다니. 우스운 일이었다.
그는 힘겨운 자세를 고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움직일 때마다 복부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자세를 고치니 한결 숨쉬기 편해졌는지 아까보다는 평온해보였다. 붉은 선혈은 온 바닥을 붉게 물들였고, 다리 한 쪽이 부러져 이동할 수도 없었기에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분명 그는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터였다.
오로라가 일으킨 혁명은, 완전히 실패라고도 볼 수 없었다. 정부군의 대책은 예상 외로 철두철미했지만, 하얀 마법사의 임기응변에 그들은 아주 잠시지만 진열이 흐트러지는 등 밀리기도 했었다. 다시금 기억을 되짚던 그는 갑자기 드는 위화감에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아무리 정부군이 혁명군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어떤 형태로 침입할지 알고 있다는 듯이 곳곳에 병력을 배치해두었다. 오로라는 상당히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정보가 새어나갈 일은 없었다. 스파이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내가 배신할 지도 모른다면?
“……설, 마….”
호흡이 가빠 제대로 말할 수 없는 그가 천천히 내뱉었다. 자신이 생각하고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 설마가 네 발목을 이렇게 잡을 준 몰랐겠지, 하얀 마법사.”
“…당신.”
“아니, 쓰레기 혁명가.”
“하하.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하얀 마법사는 그녀를 올려보았다. 그 어떤 원망의 말도, 어째서 자신을 배신하는 것인지도 묻지 않은 채. 조금의 시간도 아까운 듯 그의 시선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녀의 모습만 쫓고 있었다. 그런 그가,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욕설이라도 한껏 퍼부었으면 조금 마음이 편안해질 텐데, 그런 생각을 접을 수 없었다.
“원망은 듣지 않겠어. 난, 처음부터 당신들과 한편이 되려고 오로라에 들어간 게 아니었으니까.”
“정부군의 스파이였단 건가요.”
높낮이가 없는 어조였다. 놀라지도, 동요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배신이라도 하면 어쩔 거냐는 질문을 했을 때와는 달리.
“…이해가 안 돼.”
“뭐가 말이죠?”
“당신 말이야, 하얀 마법사! 왜 배신을 했냐고, 원망하면서 욕설이라도 퍼부으란 말이야! 근데… 근데, 왜 그렇게 웃고만 있는 거냐고!”
“처음부터 스파이였잖아요. 배신이라고도 할 수 없죠.”
그녀의 태도는 모순적이었다. 그것은 그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고. 이성적이지 못한 쪽, 그것이 그녀의 본심이었을 테지. 그는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치 사랑스러운 연인을 보듯. 그 눈동자는 더 이상, 목숨을 내놓은 혁명군이 아닌, 그저 단 하나의 인간이었다.
“당신이 내게 느꼈던 감정들이 가짜였다고도 할 수도 없고요.”
“윽…!”
용병은 반박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하얀 마법사에게 이렇게 울분을 토하는 것도, 그러면 죄책감이 좀 줄어들까 하는 탓에 있었다. 물러터진 제가 잘못이다. 혁명군 따위에게 마음을 준 것이 잘못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어도 그녀는 조금씩 그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있었다.
“가족 같이 여기는 아이가 있어.”
“……?”
“내가 그들을 배신하면, 그 아인 죽을 거야.”
“당신이라는 사람은 대체ㅡ.”
쿨럭-. 슬슬 그의 몸도 한계에 다다랐는지,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 깜짝 놀란 그녀가 달려가 그의 상태를 살폈지만,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까지 와버렸다.
“괜찮은 거야? 더 이상은 말 하지 마. 말했다간-.”
“…조금이라도.”
“말하지 말라니까!”
“조금이라도 제게 솔직하게 말하지 그러셨습니까.”
“…너…….”
“그랬더라면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용병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머릿속이 멍해져갔다. 금방이라도 눈물샘이 제 통제에서 벗어날 것만 같아 꾹 참으려고도 했다. 손에서 힘이 쭉 빠져, 오른손에 들린 총을 놓칠 뻔했다. 하지만, 그가 그녀의 손을 잡은 탓에 총은 여전히 그녀의 손에 들려있었다.
“지금이라면. 이 방법밖엔 없는 것 같네요.”
“…?! 뭐, 뭐하려는…?!”
그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방아쇠에 걸려있던 그녀의 손가락을 밀었을까. 탕ㅡ! 요란한 소리와 함께 총구 끝에서 나온 총알이, 정확하게 그의 심장을 겨누었고, 그는 마지막까지도 웃음을 버리지 않았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요.
“하얀 마법사!!!!!!!!”
띄엄띄엄 보였던 입모양이라 정확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진실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힘없는 몸이 무참히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곳에는 용병의 울부짖음만이 가득 울려 퍼졌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체를 부여잡고,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그녀의 목소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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